/ 성산칼럼

[김수정] 우리 김치, 요즘 김치

작성자
성산기획
작성일
2022-09-25 22:23
조회
25
김수정(프리랜서 기자)

 

미국에도 ‘김치의 날’이 있다. 11월 22일은 지난해 8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를 시작으로 버지니아주·뉴욕주에 이어 지난 6월 워싱턴DC에서도 ‘김치의 날’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 제정됐으며, 식품 관련 법정기념일은 김치가 유일하다. 배추·무 등 주재료에 소금·젓갈 등 다양한 재료 ‘하나하나(11월)’가 어우러져 ‘22가지(22일)’ 효능을 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 각 주에서 제정된 ‘김치의 날’이 더욱 뜻깊은 이유는 결의안에 김치의 역사와 우수성, 미국 내 인기 등을 비롯해 ‘한국이 김치 종주국(宗主國)’이라는 내용이 명시됐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김치 국제 표준 등록, 2013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김장 문화’ 등재 등으로 우리의 고유 음식인 김치를 다른 나라에서 도둑질 못하게 애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과 맞물려 실제 나타나는 수치도 고무적이다. 2011년 280만 달러(약 36억원)에 불과했던 미국 수출액은 지난해 2825만 달러(약 369억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치의 인기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전체 김치 수출액은 1억5991만 달러(약 2090억원)를 기록하며, 2009년 이래 처음으로 흑자가 났다. 수출국도 일본에서 동남아시아·미국·유럽 등 전 세계로 확대됐다.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1년 83%에서 지난해 50%로 낮아졌다.





◇김치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



2010년 설립된 과학통신기술부 산하의 세계김치연구소는 종합적인 김치 연구로 김치의 역사·문화·과학적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이들이 전개하는 김치에 대한 학술 연구는 다양한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슈퍼푸드 김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프랑스 몽펠리에대학 폐의학과와 세계김치연구소의 공동연구가 한몫했다. 장 부스케 명예교수 연구팀은 ‘김치 재료인 배추·고추·마늘 등에 함유된 각종 영양 성분이 인체 내 항산화 시스템을 조절해 코로나19 증상을 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치가 집에서 직접 담가 먹는 반찬이 아니라 공산품이라면 맛과 품질이 균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세계김치연구소는 ‘종균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종균(種菌)이 전체 발효를 주도하며 일정한 품질과 맛을 내는 김치로 숙성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3만5000종의 김치 유산균 후보 중 27종이 종균으로 선택됐고, 발효 조절 연구를 거쳤다. 종균의 대량 생산 시스템 구축과 실용화까지 완료해 2020년부터 개발 종균을 농식품부 지원으로 각 기업에 무상 지원하고 있다.



김치 최대 수출국인 일본은 2015년부터 기능성표시식품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중소업체가 일본에서 김치의 효능을 알리며 경쟁하기에는 과학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세계김치연구소는 지난해 중소업체인 뜨레찬과 함께 ‘장내 유익균 증식 및 배변 활동에 도움을 준다’고 표시할 수 있는 ‘기능성 표시 김치 1호’를 개발해 하반기 수출 예정이다.



또한, 유럽연합(EU)의 복합식품 수입 규정이 개정되면서 수출 식품에 동물성 원료가 아주 미량(微量)이라도 있으면 수출 작업장 등록 인증서를 제출해야 한다. 젓갈이 들어가는 김치 수출이 까다로워진 것이다. 세계김치연구소는 등록 인증서를 획득한 대기업의 젓갈을 중소기업이 사용할 수 있게 연결했다. 대기업은 젓갈 판매, 중소기업은 안정적인 수출로 상생하는 좋은 사례가 됐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중국·미국 등에서 생산·수출하는 김치에 ‘한국김치’ 등의 문구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김치산업진흥법과 농수산물품질관리법 시행령에 ‘김치 국가명 지리적 표시제(NGI)’ 도입 근거 규정을 마련했다. 그러나 김치 제조업계는 “주원료 모두를 국내산으로ᅠ사용해야 한다면, 고춧가루 등 공급량 부족으로 수출용 김치를 만들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에 농식품부는 국내 판매용 김치는 주원료 모두를 국내산을 사용하도록 한 반면, 수출용 김치는 김치산업진흥법에서 정의한 주원료 규정에 따르도록 지리적 표시 기준을ᅠ완화했다. 수출용 김치는 최종 제품에 혼합된 비율이 높은 순서로 3가지 원료를 국산으로 사용하면 ‘대한민국 김치’라고 표시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식탁 위에 오르는 김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주체가 힘을 모으고 있다.

(조선일보 7/27 기사 다듬음)





◇요즘 사람들이 만든 ‘김치 시즈닝’ ‘순무 라페’



드럭스토어인 올리브영에서 의외의 아이템을 발견했다. ‘서울시스터즈’의 ‘김치 시즈닝’이다. 김치를 라면 수프처럼 가루로 만든 이는 30대 중반의 젊은 사장이다. 푸드컬쳐랩 대표는 필리핀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떡볶이 장사를 시작해 1년 반 만에 직영점 8개의 규모로 키워냈다.



그녀는 세계인의 식탁을 점령할 아이템으로 김치를 택했고, 연구를 시작했다. 김치는 유통과 보관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를 개선한 가루 형태로 만들어 편하고 쉽게 맛볼 수 있게 했다. 김치 시즈닝은 김치로 만들지 않는다. 김치에 들어가는 각각의 원료를 분쇄해 시차를 두고 혼합, 숙성한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사용하지 않는 논(NON)-GMO, 비건(채식)과 글루텐 프리(Gluten-Free)를 지향하고 김치에서 뽑은 유산균까지 주입한다.



2020년 4월 ‘김치 시즈닝’ 출시 직후 아마존 칠리 파우더 부문에서 1위를 기록했다. 시즈닝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튀김 종류나 샐러드에도 뿌려 먹고 빵 반죽에 넣기도 한다. 이 마법의 김치 가루는 두바이, 말레이시아, 인도, 홍콩 등에도 진출했다.



고모네 시댁이 강화도여서 종종 순무를 맛볼 기회가 있었다. 순무 김치는 깔끔하고 알싸하며 시원하다. 총각김치나 깍두기보다 좀 투박하지만 그만큼 원재료의 맛이 더 살아 있는 느낌이다. 귀한 밥반찬이면서 모든 김치가 그러하듯 라면과도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어느 날 떠난 캠핑에서 지인이 ‘순무 라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라페(RÂPER)는 이탈리아어로 ‘강판, 채칼 등으로 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프랑스에서 라페(râpées)는 당근 샐러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채썬 당근을 화이트 발사믹 식초 등에 절인 것이다.



토속적인 순무를 이국적인 라페와 버무린 브랜드의 이름은 ‘핑크김치’였다. ‘핑크김치’ 사장은 강화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강화도 순무요리경연대회에서 대상까지 받았을 정도로 솜씨가 좋다. 그녀는 어머니의 순무김치를 소규모로 판매하면서 자연스레 순무 농사를 거들었고, 아예 어머니의 순무김치와 자신이 직접 개발한 라페, 피클 등을 묶어 ‘핑크김치’를 만들었다.



아마 ‘순무 라페’를 접한 후 ‘순무 김치’까지 탐낼 사람들도 적지는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모두 김치에 뿌리를 두거나 아이디어를 얻어 탄생한 변종이다. 하지만 정부와 관련 기관, 학계, 전통 기업들이 전개하는 노력에 더해 김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