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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스몰타임 크룩스(Small Time Crooks)

작성자
성산기획
작성일
2022-09-25 22:22
조회
41
<영화사회학 노트>

스몰타임 크룩스(Small Time Crooks):

스트립걸 출신 졸부의 상류사회 진입 프로젝트

 

 

김명수(한양대 명예교수)

 

1. 복권의 사회학

65, 45, 57, 36, 13 그리고 14.

이 숫자는 지난 7월 29일에 추첨된 당첨금액이 무려 13억 3천 7백만 달러(약 1조 7천 4백억 원 상당)에 달하는 미국의 메가 밀리언 복권 당첨 번호이다. 3개월이 넘게 당첨자가 없어 누적된 이 당첨금 액수는 미국 45개 주에서 20년이 넘도록 판매된 이 복권의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것이다. 그동안 매주 2번에 걸친 추첨에서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금액이 미국 전역을 복권 열풍에 휩싸이게 해왔다.



마침내 이번 복권의 당첨자는 일리노이 주의 한 편의점에서 달랑 2달러짜리 한 장을 산 사람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시불로 세전 7억 8천만 달러(약 1조 140억원 정도)를 받게 될 이 당첨자는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지만(영원히 익명으로 남을 수도 있다) 이제 ‘졸부’(new money)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그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동안 엄청난 경제적 재산을 한몫에 거머쥐게 된 복권 당첨자들은 인생역전에도 성공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소리소문 없이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온갖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언론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각종 사기에 걸리거나 도박에 빠져 탕진하기도 하고 방만한 투자와 투기, 엄청난 과시소비를 거듭하다가 오히려 빚더미에 올라앉는 사례들도 심심찮게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었다.



복권 당첨자를 연구하는 경제학자와 통계학자의 논문에 따르면 당첨자들은 평균적으로 10년 후에는 수령금의 16%만 남기고 나머지는 탕진한다고 한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이미 재정적 어려움에 있던 사람은 여전히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 당첨자 중 3분의 1은 파산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대박을 터트린’ 이들을 ‘행운의 저주’에 빠트려 불안정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인가? 사회학자들은 일종의 ‘지위불일치’(status inconsistency) 상황에서 오는 구조적 긴장과 불안으로 설명할 것이다. 복권 당첨자들은 경제적 지위는 급작스럽게 수직 상승한 반면 타인으로부터의 인정과 존중을 의미하는 사회적 지위는 제자리에 머물면서 순식간에 엄청난 지위불일치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런 지위간 불균형 상태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구조적 긴장상태로서 상시적 불만과 불안을 유발하기 마련이고,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을 성급하게 해소하려는 시도는 당첨자를 실패 리스크가 큰 행동으로 유도하기 쉽다. 가장 흔한 예로 당첨자들은 수입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장기적인 자금운용이나 안정적인 투자 대신에 방만한 투기적 투자와 과시적 소비를 선호하기 때문에 실패의 위험도가 매우 높아진다.



갑작스럽게 증가한 경제적 부가 상승시킨 경제적 지위와 지체된 사회적 지위간 불일치 상황이 유발하는 긴장과 불안 상태에서 성급하게 벗어나려는 시도가 오히려 경제적 지위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역설을 우리는 ‘복권의 사회학’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소개할 천재적 감독 우디 알렌(Woody Allen)의 ‘스몰타임 크룩스’(2000)는 갑자기 수직상승한 경제적 지위와 지체된 사회적 지위가 야기하는 긴장과 불안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여기서 벗어나려고 나름 창조적으로 애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는 블랙코미디이다. 여러 차례 데자뷔(deja vu)를 외칠 정도로 우리가 처한 현실 상황과 정합성이 높은 대사와 에피소드가 풍부하여 우리 자신의 진면목을 미루어 성찰해 보는 타산지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 스몰타임 크룩스

좀도둑 전력이 있는 식당 접시닦이 레이(우디 알렌)와 스트립 걸 출신 프렌치(트레이시 울만)는 부부다. 레이는 은행 옆 피자가게를 인수해 프렌치가 위장으로 쿠키장사를 하는 동안에 자기는 감방 동기들과 지하에서 터널을 뚫어 옆집 은행의 금고를 터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은행금고를 터는 일은 레이 일당에게는 무리여서 지하에서 자기들끼리 우왕좌왕하는 판에 위장으로 차린 쿠키가게는 프렌치의 쿠키 굽는 솜씨로 ‘대박’이 난다. 은행을 터는 대신에 아예 쿠키 프랜차이즈 회사를 차린 레이와 프렌치는 순식간에 엄청난 졸부가 된다.

 

[caption id="attachment_7053" align="aligncenter" width="300"] 레이와 프렌치[/caption]

 

[caption id="attachment_7048" align="aligncenter" width="300"] 선셋쿠키 CEO 프렌치[/caption]

 

평소 다이에나 왕세자비 비디오를 즐겨보면서 상류사회의 삶을 막연하게 동경해 오던 프렌치는 이제 막대한 재산을 바탕으로 마침내 꿈에 그리던 상류사회 로의 진입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와 잡지에서 보아온 상류사회 라이프스타일을 ‘카피 켓’(copy cat)처럼 복사해 실천하기 시작했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고급 주택가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의 펜트하우스를 호화로운 고가의 가구들로 가득 채웠으며, 명품 브랜드가 요란한 고가의 의상들을 갖추어 입고, 프랑스에서 수입한 달팽이 요리를 먹기 시작하였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후원자(patron)가 되는 것이 상류사회로 진입하는 통로라는 것을 영악하게 파악한 프렌치는 사회적 저명인사들인 후원자들과 친교를 맺기 위해 이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caption id="attachment_7049" align="aligncenter" width="300"] 하프가 있는 거실[/caption]

 

손님맞이로 고급 가구들을 들여놓느라 어수선한 집으로 레이가 투덜대면서 들어온다. 그는 상류사회 ‘코스프레’하는 프렌치의 행동이 잔뜩 못마땅하여 사사건건 토를 단다.



프렌치(F):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 그쯤 해둬요.

레이(R): 뭐가 중요한데?

F: 미술계 중요한 인물들을 우리 집에 초대했어요,

나도 회원이 되어볼까 해서요.

R: 돈만 내면 자동으로 회원이 되는데?

. F: 그냥 회원이 아니라 후원자(patron) 말이에요.

R: 사교계에 데뷔하려고?

F: 그게 뭐가 잘못이죠?

R: 우리가 돈을 벌면 플로리다에 가서 편하게 살기로 했잖아?

수영도 하고 게도 먹고...

F: 다른건 모르겠고 나는 스트립 걸 시절을 잊고 싶을 뿐이에요.



레이는 넝쿨째 떨어진 엄청난 부를 즐기면서 얼마든지 안락하게 살 수 있는데도 구태여 어렵고 힘든 길을 찾아 가려는 프렌치를 이해하지 못한다. 상류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길을 닦기 위해 미술관 후원자 그룹을 집으로 초대한 프렌치는 자기 부부도 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경제적 자산뿐 아니라 문화적 소양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과시한다. 그러나 프렌치 부부의 주요 관심사나 취향이 손님들과 너무 달라서 이들 사이의 대화는 계속 엇박자를 낼 뿐 이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농담도 서로 통하지 않았다.



과연 프렌치와 손님들의 취향이 어떻게 다른지, 또 취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을 한번 보자. 손님 중 미술품 개인 딜러인 데이빗(휴 그랜트)은 프렌치가 닮고 싶은 상류사회의 롤 모델이다. 누가 묘사한 대로 그는 ‘잘생기고 똑똑하고 매력이 넘치는데다가 기품’이 있다. 데이빗은 이제 미술품을 수집해볼까 한다는 프렌치의 말을 듣고 관심을 보인다.

 

[caption id="attachment_7051" align="aligncenter" width="300"] 데이빗[/caption]

 

데이빗(D): 누구 작품에 마음이 갑니까?

프렌치(F): 렘브란트, 피카소, 미켈란젤로... 그런 화가들 작품이에요.

D: 지금 미켈란젤로 작품이 나와 있는 것은 없고..ㅎ.

얼마 전에 데이먼 덱스터의 작품 하나를 입수했는데....

F: 전혀 못 들어본 이름이네요.

D: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아요.

(포도주 향기를 맡으면서) 이 포도주 향기는 정말 좋군요.

F: 이 포도주는 핑거 보울(finger bowl)을 준비한 바로 그 요리사가

고른 거랍니다. 손가락은 씻으셨나요?

손님 1: (당혹감에 빠진 데이빗을 구하기 위해 대화에 끼어든다)

데이빗은 포도농장을 갖고 있어 와인 맛에 정통하죠

F: 미술을 전공하셨나요?

D: 아뇨. 그게 늘 아쉬운데, 사실은 문학을 전공했죠. 그러다가 주식

브로커를 좀 했고, 일본에 가서 불교에 심취했다가... 대학에서

잠깐 미술도 가르쳤죠. 그리곤 포도농장으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프렌치 부부와 후원자 그룹 사이의 문화적 소통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것이다. 아비투스란 사회계급적 맥락 속에서 공식 비공식 교육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습득되는 ‘취향의 체계’(taste system)이다. 그에 의하면 가족과 학교와 같이 사회계급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사회화의 경험은 각 계급에 특징적인 아비투스, 즉 취향의 체계를 구성한다.



데이빗의 어휘, 몸짓, 대화 내용, 문화적 소양 등은 그의 가족이 위치한 사회계급적 맥락에서 학교교육과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오랜 기간 습득한 취향의 체계이다. 그런가 하면 월요일 저녁 일터에서 돌아와 맥주 캔을 들고 TV 앞 소파에 앉아 미식축구 리그경기에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것은 미국 노동자 계급의 취향이다. 마치 가랑비에 흠뻑 젖듯이 각자 다른 위치를 점유하는 사회계급적 맥락 속에서 취향은 자기도 모르게 몸과 마음의 습속으로 자리를 잡아 자연스럽게 행위로 표출되는 것이다.



프렌치도 데이빗과는 다른 사회계급적 맥락에서 아비투스를 형성해왔을 것이고 여기서 비롯되는 행위를 하며 나름 안정적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적어도 사회적 지위를 급격히 상승시키고자 시도하면서 자기의 오래된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던져 버리기 전까지 말이다. 프렌치는 상류층 손님들에게 자기 부부에 대한 인상을 깊게 심어주려고 저녁내 전력을 다해 접대하였건만 손님들이 자기 부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뒷담화하는 것을 지나가다가 엿듣고 만다.

 

 

[caption id="attachment_7052" align="aligncenter" width="300"] 뒷담화[/caption]

 

손님 2: 이 집은 모든 것이 번쩍거려요. 고문당하는 느낌이에요.

손님 3: 이렇게 촌스러운(bad taste) 인테리어는 처음 봤어요.

옷 입은 것하고는...

손님 4: 이 부부 얼굴을 보면 웃음을 참을 수 없어요. 돈을 처발랐어요.

손님 5: 표범 가죽하고 무슨 원수를 졌나? 거실에 있는 하프는 어떻고?



프렌치 부부의 취향에 대한 손님들의 거침없는 비판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크게 낙망하지만 유흥업소 밑바닥 생활에서 다져진 낙관적 순발력을 갖고 다시 스프링처럼 튀어 일어난다. 프렌치는 언젠가는 마주칠 수밖에 없는 뼈아픈 진실을 외면하는 대신에 오히려 자각의 계기로 삼아 더욱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상류사회 진입 프로젝트를 가다듬어 시행하기로 결심한다.



프렌치(F): 다들 우리를 ‘고상한 취향이 없는’(no class) 졸부라고 놀려요.

레 이(R): 당신은 어떤지 몰라도 난 아냐. 내 농담에 다 녹아나던걸.

(F):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혔지만 맞는 말인 것 같아요.

(R): 신경 쓰지마.

(F): 중요한건 ‘취향’(class)이라구요.

음악, 술, 그림, 책 모두 다요.

(R): 제발 그만 좀 해.

(F): 가난뱅이로 살아서, 무식해서, 항상 일을 하느라 배울 시간이

없어서 그랬지. 나도 공부를 했으면 잘했을 거예요. 그때 선생을

잘 만났더라면...

(R): 난 공부 같은 것은 취미가 없었어.

(F): 취향은 흉내를 내거나 빌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요.

(R): 오늘 손님 중 나만한 사람도 없던데 뭘.

(F): 아니, 우리는 돈으로 그 자리를 사서 어설픈 흉내를 내는

졸부라구요.

(R): 난 아냐.

(F): 더는 이렇게 안돼요. 이젠 돈으로 뭔가 다른걸 하자구요.

다른 인생을 살자구요.

(R): 난 너무 바빠서 안돼. 난 이따위 턱시도 안 입을 거야.

플로리다로 가겠어.

(F): 난 우아하게 살겠어요. 당신도 그래야 해요. 당신이 그대로라면

어떻게 같이 살겠어요?

 

[caption id="attachment_7047" align="aligncenter" width="300"] 미술관 투어[/caption]

 

프렌치는 데이빗을 찾아가 상류사회 진입을 위해 고급 취향을 습득할 수 있는 속성 과외 수업을 해줄 것을 청한다. 이를 수락한 데이빗은 박물관 및 미술관 현장 방문, 음악회 참석, 문학토론, 유럽 현지 박물관과 오페라 기행 등으로 커리큘럼을 짜서 프렌치를 사사한다. 상류층과 자신이 사용하는 어휘의 차이를 절감한 프렌치는 사전을 ‘A’부터 시작해 통째로 외우기 시작한다.

 

 

[caption id="attachment_7050" align="aligncenter" width="300"] 취향의 차이[/caption]

 

프렌치는 남편 레이에게도 ‘인생역전’ 프로젝트에 같이 동참하기를 강요하지만 ‘자연인’ 레이는 자신의 취향에 충실하기로 하면서 프렌치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다.

3. 신데렐라는 없다: Just Be Yourself

과연 프렌치는 상류사회로의 진입에 성공했을까? 아니면 복권의 사회학에서 예견한 것처럼 실패의 길로 갔을까? 동화 속에서 그리고 K-드라마에서는 무수히 많은 신데렐라들이 탄생한다. 로맨틱 코미디 ‘노팅힐’에서는 남자 신데렐라가 등장하기도 한다. 스포일러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기서는 프렌치가 상류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어떤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하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경제적 지위의 상승과 사회적 지위의 상승은 제각기 다른 작동 원리가 작용한다. 즉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지위도 그러하다. 막스 베버는 경제적 지위와 사회적 지위를 정치적 지위와 함께 각기 다른 영역에서 작용하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권력관계로 파악한다. 한 사회의 권력 정치, 경제, 사회 영역에서 경제적 계급(class), 사회적 신분(status), 정치적 파벌(party)의 형태로 존재한다. 경제적 관계는 재산의 유무와 종류, 크기로 측정되고 객관화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신분은 특정인이나 집단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와 그 결과로서 부여된 위세나 위광(prestige and esteem)이다.



역사적인 예를 들어보자. 조선시대 사농공상의 신분제 아래에서 남산골 딸깍발이 샌님이나 청백리는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청빈했지만 사회적 인정과 위세는 대단하였다. 반면에 양반들에게 고리대금업을 하였던 상인 계급은 상업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하였지만 사회적 위세는 낮았다. 유럽의 경우에도 대금업에 대해 윤리적으로 부담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사회적 위세가 낮았던 유태인들에게만 이를 허용하였으며 이는 훗날 유대계가 금융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사라진 산업화 이후 현대 계급제 사회에서도 계급과 신분, 그리고 정치 영역은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것이 지위불일치와 아비투스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맥락이다. 이러한 구조적 맥락에서 프렌치는 갑자기 갖게 된 엄청난 규모의 재산을 활용해 고급주택과 가구, 명품 옷가지, 고급 요리를 과시적으로 소비하면서 사회적 인정을 기대하였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조롱만 자초했을 뿐이다.



과시소비(conspicuous consumption)가 별무소용임을 체득한 프렌치는 영악하게도 ‘문제는 아비투스’라는 비결을 터득한다. 프렌치가 상류사회에 진입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가 가진 부에 대해 사회적 인정과 존중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스트립 걸 출신의 과거를 ‘세탁’하려는 심리적인 동기도 내보인 바 있다. 그러나 상류사회의 진입 요건은 상류사회 구성원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취향의 체계, 즉 아비투스를 갖추고 있는가이다.



프렌치는 늦게나마 상류사회 아비투스를 구축하려 하면서 이제까지 자신이 나름 구축해온 하류계급적 아비투스를 송두리째 버리려 하고 있다. 그 대신에 상류층 취향의 습득과 체화의 과정을 단기 속성 과외로 마치면서 재사회화를 시도하고 있다. 과연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아마 성공한다 해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서양에서는 제1세대에서 경제적 성공으로 졸부나 신흥부자(new money)가 된 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진정한 부자(old money)가 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을 대개 3세대로 잡는다. 경제적 부의 축적에 대한 시간의 검증과 함께 재사회화에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룻밤 사이에 인생역전을 통해 상류사회에 진입하는 신데렐라는 없다.



만약 사회적 지위가 가정과 학교에서의 사회계급적 맥락에서 사회화를 통해 구성되는 아비투스에 의해 결정된다면 프렌치에게 영영 기회가 없다는 것인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에 대한 대답은 다른 질문을 유발한다.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당위적으로 상류사회에 가야만 하는가? 이제까지 자기가 살면서 쌓아온 것을 송두리째 포기하고(formatting) 남의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바꾸어 나가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우선 답해야 한다.



복권 당첨자들을 연구해 온 사회학자 설동훈은 ‘복권 당첨 전과 후에도 자신의 생업을 바꾸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 정도가 가장 높았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Just be yourself’(있는 그대로의 너를 보여줘). 이 말이 나오게 된 구체적 맥락은 모르겠으나 미국의 대통령 부인이 한국의 대통령 부인에게 조언으로 던진 말이라 한다.



남편이 상원의원, 부통령, 그리고 대통령에 이르도록 부인 질 바이든은 자기의 전문직업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신의 경력과 의지를 바탕으로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자기 남편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나는 내가 쌓아올린 나일뿐이라는 자존감이 얼마나 그녀를 당당하게 보이게 하던지 화장기 없이 주름이 깊게 패인 그녀의 사진 얼굴을 한번 더 보았다.



후기: 프렌치의 남편 레이는 돈을 벌면 플로리다로 이사를 가서 게도 먹고 수영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그렇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