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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희] 씻김 받고 꽃상여 타고(2) - 가난이 살려낸 것들 24

작성자
성산기획
작성일
2022-09-25 22:22
조회
30
장진희(전남 곡성군 죽곡면)

 

상여가 나갑니다. 꽃상여가 나갑니다.



호상이니 밤새 다시래기를 하고 놀았으면 좋았을 것을.......다시래기는 북 치고 장구 치고 징 치고 꽹과리 치고 춤추고 노래하고... 슬픔에 빠져 있는 상주와 일가친척을 위로하기 위한, 요새로 말하자면 가무극 형태의 놀이입니다. 다음날 상여 나갈 때 상두꾼들이 상여 메고 상여소리를 하기 위한 일종의 예행연습이기도 합니다.

빈 상여를 메고 상여놀이를 하고 흙을 파내는 시늉을 하며 가래소리도 합니다. 땡땡이 중과 부인과 장님 하는 꼴이 보는 사람들 배꼽을 쥐게 만들어 놓고, 이승과 저승이 하나이고 망자 살아 생전 훌륭한 꼴, 흠잡힌 꼴이 모두 한바탕 우스개 판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훌륭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훌륭할 것이고 부잡스런 짓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천하 난봉꾼 망자도 열녀춘향 망자도 다시래기 놀이판에서는 인생 한 판일 뿐입니다. 진도에서는 두건을 쓴 상주가 웃음 웃는 것이 흉잡힐 일이 아닙니다.



곡(哭)을 잘해야 가슴에 슬픔이 잘 다스려지고 곡을 잘해야 훌륭한 상주라 하니, 가락에 맞추어 길게 뽑아내어 망자 설움 내 설움 모두 부른 곡'소리'(그냥 소리가 아니라 판소리, 창의 의미로 소리입니다)에 목이 쉬고 눈이 부은 상주가 다시래기 놀이에 웃음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놀이꾼들은 "에라, 조오타!" 하고 더 신이 나서 놀아줍니다.



이제는 초상집에서 다시래기를 놀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향토문화회관이나 남도국악원 공연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씻김굿을 해드렸으니 그것으로 다행입니다.



다시래기 한 판 놀이 대신에 윷판이 밤새 돕니다. 일이 만 원 '찔림'을 하는 동네 사람들은 돈을 잃건 따건 흥겨운데, 장의사를 통해 어느 동네에 초상이 났다 하는 기별을 들으면 뜨는 전문 윷노름꾼들은 경찰단속도 없는 공인된 노름판에서 큰 판돈이 오고갈 때마다 눈이 벌개지도록 밤을 새고 동터 오자 초상집을 떠납니다.



노름판이든 뭐든간에 초상집에서 시끌벅적 놀아주고 밤새주고 음식 먹어준 것이 보시인 것이어서 초상집 아낙들과 몇몇 '호상계' 아낙들은 윷판 밥 시중, 술 시중으로 또 밤을 꼬박 샙니다. 초상 치르는 동안 육고기가 동나지 않게 고루 나누어주는 임무를 맡은 '육감'도, 밤을 샌 동네 윷놀음꾼들 눈도 벌겋습니다.



산 사람은 또 살아야 하고, 살자면 먹어야 하니 눈 한번 붙이지 못한 초상집 아낙들과 동트자마자 달려온 동네 호상계 아낙들이 또 그 많은 사람들 아침을 차려 먹이고 나면 해가 앞산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이제 상여가 나갑니다. 호상계 아낙들은 행주에 젖은 손을 닦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하양 치마 저고리를 차려 입고 아낙들이 줄줄이 나서니 후와아~~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 따로 없습니다. 호상계 아낙들이 상여에 앞설 채비를 갖추고, 상두꾼들은 방에 안치된 관을 운구합니다. 상여소리 소리꾼이 선소리를 시작합니다.



"나~무아미~타~아불~ 관~~암~~보~오살"

상두꾼들이 받음소리를 합니다.



"나~무아미~타~아불~ 관~~암~~보~오살"

"가자~서라~가자서라~

왕~생극락을가자서라~

북망~산천~어이가리~

황천~길이~어디라고~

그리~쉽게~가셨는가~

북망~산천~나는간다~"



굿거리 가락의 '나무아미타불' 소리로 바깥마당에 상여가 안치되었습니다. 형형색색 곱디고운 꽃으로 참 이렇게도 이쁘고 환하게 단장한 꽃상여입니다. 살아 생전 희노애락 온갖 표정이 다 자고 꽃처럼 환하고 편안한 얼굴로 망자가 꽃상여에 누워 있습니다. 지상에 와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쇠(꽹과리) 소리가 자자자자~~ 울립니다.

상두꾼들이 "어~~~" 소리를 하며 땅에서 들어올릴 준비를 하고, 또 자자자자~~ 울리면 허리까지 올렸다, 마지막 자자자자~~ 소리에 상여를 어깨에 멥니다. '어~~' 소리는 모실 어(御), 상여를 모시는 소리입니다.



상여를 멘 상두꾼들이 느린 진양조 가락의 '긴염불' 소리에 맞춰 앞뒤로 천천히 움직입니다. 중모리 가락의 '중염불' 소리로 이어집니다.



"나무야 나무야 나무나무우 나무야

나아무뿌리가 세로아미~났네~

동해로 뻗은가지 목토보살 열리시고

남으로 뻗은 가지 화보살 열렸네

나무야 나무야 나무나무우 나무야

나아무뿌리가 세로아미~났네~

서해로 뻗은가지 금호보살 열리시고

북으로 뻗은가지 수호보살 열렸네~..."



지상에서 몸 부렸던 집을 떠나 저승길 나서는 발인제를 모시고, 꽃상여 앞에 하양 선녀 옷을 입은 호상들이 앞섭니다. 양쪽에서 상여에 맨 하얗고 긴 질베(저승가는 길, 길베)를 두 줄로 이어 잡고 스무 명 남짓 선녀 같은 호상들이 상여를 이끄는 것입니다.



맨 앞에 영정과 망자 신발과 향을 넣어 모신 앵여(아주 작은 꽃가마)는 마을 사람 중에서 상여를 멜 수 없는 몸 부실한 사람 둘이 나와 메고, 뒤로 만장이 서고, 호상들이 두 줄로 앞서고 그 뒤로 상두꾼들이 멘 꽃상여가 들려 있습니다. 상주와 가족들 그리고 문상객들이 그 뒤를 따릅니다.



한 사람 가는 길에 보내는 사람 줄이 길기도 합니다. 살아 생전 인연의 끈이 길기도 합니다. 그 긴 인연들이 망자를 보냅니다. 상여소리가 울려퍼집니다. '애소리'입니다. 슬플 애(哀)자 애소리, 슬프고도 슬픈 소리입니다. 소리꾼이 선소리를 하고 호상들과 상두꾼들이 받음소리를 합니다.



"애~~애~~ 애애애해애야~ 애

애~ 애~ 애 애애애야애~~"

"애~~애~~ 애애애해애야~ 애

애~ 애~ 애 애애애야애~~"

"어이를 갈거나~~ 어이를 갈거나

오날~ 가면은 못 오는 길~을"

"애~~애~~ 애애애해애야~ 애

애~ 애~ 애 애애애야애~~"

"옛늙은이 말들으면 저승길이 멀다더니

오날~~ 보~오니 앞동산이 북~ 망"

"애~~애~~ 애애애해애야~ 애

애~ 애~ 애 애애애야애~~"



"여보시오 상두꾼들~~이내말을~ 들어보~소

너도죽으면 이길이요 나도죽으면 이길이구나

삼천갑자 동방삭은~~삼천갑자~살었는디

요내~나는 백년도 못살아

못가것네 가기싫네~~내집두고~못가것네~

친구~두고서 못가~거엇네

친구분네 잘있거라~~동네방네~잘있거라~

나는~간다~북망~산~천"



구비구비 재미진 일, 복장 터진 일, 오진 일, 애터진 일, 서러운 일, 쓰라린 일, 이 일 저 일 다 날려버리도록 신명나게 한바탕 어울어져 놀던 일... 온갖 사연이 호박넝쿨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돌담을 끼고 동네를 휘돌아 상여가 동구 당산나무 아래에서 멈춥니다. 정든 마을도 미운 정 고운 정 온 정 든 마을 사람들도 떠나는 것입니다.



상을 차리고 노제를 지냅니다. 상주와 가족들이 꽃상여 앞에 나와 절을 하고 술을 올립니다. 노제를 지내고 꽃상여는 중모리 가락의 '하적소리'를 들으며 또 길을 떠납니다. 다리가 가볍거나 무겁거나 망자 평생 두 발로 걷던 길을 이제 두 손 두 발 다 내려놓고 편안히 누운 채 사람들이 태워주는 꽃상여를 타고 갑니다. 모내기를 하고 김을 매러 다니던 논둑길을 지나고 밭둑길을 지나갑니다.



이제 너무 늙어 장지까지 같이 갈 수 없는 이웃집 할아버지가 당산나무 아래 남아 두 손으로 지팡이를 모아 짚고 멀어지는 상여를 바라봅니다. 하얀 치마저고리에 하얀 머릿수건을 쓴 선녀들... 하얀 질베... 하얀 바지저고리를 입은 상두꾼들.... 오색찬란하고 높디높은 꽃을 매단 상여 꼭대기에도 하얀 꽃이 피어 있습니다. 저승길은 하얀 길입니다. 흰옷 좋아 늘상 입던 이승인데 저승 갈 때도 저리 눈부시게 하얗게 가겠구나...



"하적이야~~ 하적이로~고나아

세왕산 가시자고 하적으을 허네~

불쌍하신 금일영가 이세상을 하직하고

멀고먼 황천길로 하직이로구나

불쌍하신 금일영가 천만년을 살자드니

속절없이 죽어져서 하직이로구나

애지중지 하던자식 한푼두푼 모은재산

오늘 다버리고 하직이로구나

육진장포 일곱매로 내몸이 꽁꽁묶여

내부모 타고간 상여타고 하적을 하네

입던옷도 벗어놓고 신던신발도 벗어놓고

황천길 가시자고 하적을 하네"



진도의 상여소리에는 풍경이나 요령이 없습니다. 쇠, 장구, 북, 징 소리에 맞춰 점점 빠르고 신명나는 가락으로 이어집니다. 슬픔만도 아니요 기쁨만도 아닌, 슬픔이 기쁨이고 기쁨이 슬픔인 소리요 가락입니다.



이어지는 중모리 가락의 '애소리' '중염불소리' '관암보살소리'에 따라 발을 맞추니 꽃상여에 누운 망자도 편안하고 상두꾼들 어깨도 힘이 덜 듭니다. 가락에 몸을 실으면 무거운 짐도 안 무겁고, 먼 길도 멀지 않습니다.



"이제나~가면은~~언제나~오실라요~

오시는~날이나아 일러를 주고가시오

처자식도 다버리고~친구갑장~다버리고

나는~가안~다 북망~산~천

오날은 가다아~~어디가서~쉬어가며

내일은~어디가서 자고를 갈까~

구름도 쉬어넘고~~날짐승도 쉬어가는

심산~험로를 어이를 갈~까

육진장포 일곱매로~상하로~찔끈매고~

상여~타고서 아주~가~네

못가것네~못가것네~

못가것네~가기싫네

한번~가면은 못오는~길을~"



상여소리도 쉬어가고 상두꾼들 어깨도 아파올 무렵 쇠 소리가 자자자자~~ 울리고 상여가 멈춥니다. 망자가 저승 갈 때 꼭 필요한 물건이 노잣돈입니다. 노잣돈이 부족하면 상여가 나가지를 않습니다. 상주와 가족들이 나와 꽃상여에 노잣돈을 끼워줍니다.



한바탕 소리 하고 춤추고 놀다 상두꾼들은 상여를 메고 일어났는데 앞서서 상여를 이끌어야 할 호상들이 질베를 잡을 생각을 안 합니다. 도시에서 오래 살다 장례식에 온 일가친척들이 눈치를 못 채고 호상 질베에다 노잣돈 올려 주는 것을 소홀히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선녀들이 서운해졌습니다.



"어어머어니임에 손으을 노오코 돌아아설제에에에

부엉새도 울어었다오호오 나도 우울어어어었소... 꿍짜짝 작짝!..."



쇠를 잡은 아낙과 호상들이 북 치고 장구 치고 한바탕 노래자랑이 시작되었습니다. 박수 소리 웃음 소리 요란하고 어머님 전상서에 아버님 전상서로, 고향으로 타향살이로 노래가 이어지다가 급기야



"저 푸른 초원 위에... 으짜라짜라 짜라짜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으짜짜자 짜자자자..."



뽕짝 뽕짝 신이 났습니다. 도시에서 온 젊은 문상객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슬퍼서 대성통곡을 해도 모자랄 판에 꿍짝 꿍짝 뽕짝 뽕짝이라니... 더구나 여자들이!



다른 지방에서는 여자는 상여를 멜 수도, 심지어 따를 수도 없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여자들이 상여를 이끌고 여자들이 앞서지 않으면 상여가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상여 나가는 데 꽹과리, 징, 북, 장구 다 두들기고 더구나 여자 상쇠라니... 놀랄 노 자의 연속입니다.



상주가 슬그머니 다가와 젊은 처조카 어깨에 손을 한 번 얹어 주고는 호상들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지폐를 여러 장 단단히 올려 줍니다. 이어 가족들도 차례로 나와 질베에 노잣돈을 올립니다.



상여끈에 찌르거나 질베에 올린 지폐는 망자에게는 저승길 노잣돈이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다음 초상 때를 위해 모아두는 상두곗돈, 호상곗돈이기도 합니다. 물론 종일 무거운 상여를 메느라 힘쓴 상두꾼들 어깨를 위해 술 한 잔 털어 넣어 줄 밑천이기도 하고, 자금이 넉넉해지면 상두계나 호상계에서 농한기 때 팔도유람을 갈 수도 있습니다.



쇠 소리가 자자자자~~ 합니다.

"자아, 저승길이 멀다 한디 이라고 놀고만 있을 수는 없능께! 인자 질베들 잡어보쑈. 또 길을 가봅시다아~~!"



여자 호상계의 위력을 발휘하고 나서 상여소리는 어느새 남자 소리꾼에서 쇠를 치던 여자 소리꾼으로 바뀌었습니다. 애소리, 중염불소리, 관암보살소리에 맞춰 꽃상여가 나갑니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진다고 설워마라

명년삼월 봄이되면 너는다시 피련만은

인생아차 죽어지면 움도싹도 아니나네

나는간다 나는가네 멀고먼 황천길로

불쌍하신 금일망제 아주가고 영영가네

앞산은 가까워지고 뒷산은 멀어진다

높은데는 낮춰주고 낮은데는 높여주고

가는날은 있건만은 오는날은 기약없네..."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만납니다. 상여소리는 중중모리 가락의 '천근소리'로 바뀝니다.



"아~ 아~~ 아 애~ 애요~ 아~ 아~~ 아 애~ 애요~

천~~근~~ 이~~ 야~아 천~~ 근~~ 이~~ 요~~

가자~서라~ 가자~서라~ 왕~생극락을 가자~서라

목~마른자는 물을~주어~ 급~수공덕에 다리~천~근~...

깊~은물에다 다리를놓~아 월~천공덕에 다리~천~근

쉬어~가세~ 쉬어~가세~ 다~리천근에 쉬어~가세~"



조금 빠른 '천근소리'가 이어지면 상주들에게 천을 달라고 버티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놀이가 벌어질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쇠 소리가 자자자자~~ 울리며 또 상여가 멈춰섭니다. '못가것네' '쉬어가세' 하고 버티면 꽃상여 멘 상두꾼 어깨 위와 호상들 질베에 고루 천(노잣돈)이 꽂아지고 놓입니다.



상두꾼도 호상도 일가친척도 또 한바탕 놀이판에 지치도록 놀아봅니다. 동네명창이 다 나와 돌아가면서 소리를 하고 젊은 사람들은 뽕짝에 트로트에 부르스까지 각양각색의 노래가 다 등장합니다.



남정네들보다 두어 배는 일이 많은 섬 아낙들이서일까, 호상계 아낙들은 노는 판에서도 남정네들보다 워너니 질기고 셉니다. 상두꾼들이 놀다 지쳐 꽃상여 옆에 앉아 있는 사이에도 호상들은 지칠 줄을 모릅니다. 그래봐야 동네 밖에서 십리의 반에 반도 못 되는 길인데 가는 길보다 노는 길이 더 깁니다. 상두꾼 틈에서



"어어이, 인자 그만 하고 가세에!"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참 신나게 놀고 있는 호상꾼 틈에서

"아, 호상 없이 상여 나가 볼라고?"

하고 대꾸합니다.



"아따! 에지간히 하고 인자 그만 가자고오."

"우리는 아직 멀었는디?"

"아이 씨, 생여 매니라고 어깨가 빠질락 하는 사람들도 있는디 어째 저라고 호상들이 유세여어?"

"머시라고라우? 호상들이 유세라고라우? 유세는 상두꾼들이 하고 있구만이라우, 고까짓 상여 매는 것이 머시 그라고 심들다고..."

"오메, 차말로 환장하것네. 그라믄 호상들이 생여 한번 매볼라요?"

"아이, 우리가 매라믄 못 맬깜시로?... 어어이!... 우리 호상들이 생여를 매락 안 하요오!"



왕언니 호상이 소리를 하자 호상들이 우루루 일어나 상여끈을 잡습니다.

"오메, 오메, 이 아짐씨들이 차말로 어째서 이란당가아~!"

상두꾼들이 일어나 말립니다.

"아이, 우리한테 생여 매람시로라우, 말리지 마쑈잉~!"



참으로 신통방통한 일이 다 벌어졌습니다. 망자 할머니 기운이 보통이 아니더니 망자 데려다주는 호상들 위세가 대단합니다. 선녀 옷 입은 호상들이 상여를 메고 상두꾼들은 맨손으로 뒤를 따르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입니다.



상여 나가는 날 사람 많이 오고 걸판지게 잘 놀아주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습니다. 망자가 하늘 가는 날 벌어지는 축제입니다. 상여놀이가 흥겹고 신명나게 어우러지는 만큼 망자가 저승에서 좋은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상주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한바탕 웃음 소리, 고함 소리, 노랫 소리 울려퍼지더니 상두꾼들이 하나둘 호상들 어깨에서 상여끈을 뺏어 멥니다. 이제 도로 호상이 앞장서고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고 갑니다. 꽃상여가 상두꾼들 어깨 위에서 노래하듯 물결칩니다.



상여가 산을 오릅니다. 묘소 가는 길이 오르막이고 상두꾼들 어깨가 무겁습니다. 빠른 자진모리 가락의 '자진염불소리'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암~보~살 관암~보~살

이질(길)닦아 가시다가 나무아미타~불

독(돌)에앉어 쉬지마오 관암~보~살

석신이나와 질을막소 나무아미타~불

또가시다가 뻐치시면 관암~보~살

흙에앉어 쉬지마오 나무아미타~불

토신이나와 질을막소 관암~보~살

또가시다가 더럽다고 나무아미타~불

물가에앉어 쉬지마오 관암~보~살

용신이나와 질을막소 나무아미타~불

또가시다가 정자좋다고 관암~보~살

나무밑에 쉬지마오 나무아미타~불

제~보오살~ 제~보오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상여소리는 망자가 정들고 낯익은 이승 길을 떠나 아득하고 낯선 저승길을 잘 여행하여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줍니다. 더불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별의 아픔, 삶의 설움을 어루만져 줍니다. 망자 가는 길을 함께 하니 죽음과 삶이 뭐 그리 다를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왠지 내일은 새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기고 있습니다.



"다와가네 다와가네 만년유택 다와가네

정든집 뒤에두고 땅속이 웬말이냐

극락세계 어찌갈까

가다가다 못가거든 고부해도 쉬어 가고

그래도 가다 못가거든 나뭇가지에 쉬어가고

그래도 못가거든 구름속에 물려가고

훨훨 날아 잘 가시게

저승길이 길이라면 어찌 내가 못올쏘냐

황생극락이 그리 좋은가

처자식도 하적하고 살든집도 하적하고

일가친척 하적하고 동네방네 다버리고

왕생극락 가셨다네"



묘소에 다 왔습니다. 상여소리는 어느새 '축원'으로, '가난님 보살'소리로 바뀌어 있습니다.



"오늘 가시는 망제씨가 가난님보오오살

극락가고 새왕가네 가난님보오오살

월궁에가 맺히시고 가난님보오오살

중궁에가 맺혔다가 가난님보오오살

쑥물 상물(향물)로 씻겨를 내어 가난님 보오오살

진옷 벗어 거둬두고 가난님 보오오살

어둔 질도 밝혀가고 가난님 보오오살

밝든 질도 넓혀갈제 가난님 보오오살

천상(天上)학교(學敎) 요대강에 가난님 보오오살

신선되어 가시라고 가난님 보오오살......"



한도 끝도 없이 '가난님 보살'을 욉니다. 관세음보살, 관음보살, 관암보살 소리는 들어봤어도 '가난님 보살'은 뭔 소린 줄 모르겠습니다. 아마 가난이 보살인 모양입니다. 관음보살, 약사보살, 지장보살 못지 않은 보살이 '가난'이라는 이름의 보살인 모양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여! 천국이 그대 것이니라" 했던가요? 가난해야 보살이 되는 이치가 동서양이 따로없는 모양입니다.



이제 상여를 안치하고 중모리 가락의 '가래소리'가 우렁차게 퍼집니다. 가래소리는 관을 묻기 위해 흙을 팔 때 하는 소리였을 것입니다만 지금은 이미 포크레인이 와서 무덤을 다 파놓았습니다. "여~~ 여~~ 어기야~ 청~ 청



알아~감실로 닦아나~주소~

일세동방~ 다굴적에~

청용한쌍~ 묻혔으니

용의머리~거치지않게

알아감실로 다구소

이세남방~ 다굴적에~

거북이한쌍~ 묻혔으니

거북이머리~거치지않게

알아감실로 다구소...

아~아아~ 어어~어허어

어기야 청~청 닥~ 우요~

앞~에 앞두산 바라~보니~

문~필봉이~비쳤 네~에

대~~대문장이 날 명~당~

뒤~에 뒷두산 바라~보니~

노~적봉이~비쳤 네~에

대~~대장자가 날 명~당"



하관식을 마지막으로 상주들이 나와서 흙을 한 삽씩 뿌립니다. 이제 정말 이별입니다. 굴건제복을 한 상주들이 낮게 울음을 터뜨립니다. 포크레인이 와서 흙을 덮습니다. 포크레인이 흙을 다 쌓아주고 삽날로 꾹꾹 눌러주니 사람들이 몰려와 땟장을 붙입니다.



상여소리는 빠른 자진모리 가락의 '다구질소리'로 바뀌었습니다. 포크레인 삽날로 흙을 꼭꼭 찍어 누르는 대신에 옛날 같으면 사람들이 발로 흙을 꽁꽁 다지면서 하는 소리였을 것입니다.



"어기야 청청 다구요오 어기야 청청 다구요오

쿵쿵 찍어 잘다군다 어기야 청청 다구요오

인제 가면 언제와요 어기야 청청 다구요오...

여그 저그 땟장 떠서 어기야 청청 다구요오

둥그랗게 묻어 놓고 어기야 청청 다구요오

자손들은 꿇어 엎져 어기야 청청 다구요오

마지막 하적을 하고 가세 어기야 청청 다구요오

죽은사람은 묻어 놓고 어기야 청청 다구요오

산 사람은 돌아 가세 어기야 청청 다구요오"



이제 막 자리한 상석 위에 진짜로 마지막 술을 올리고 절을 합니다. 무덤가 한쪽 빈 밭에서 두건이며 상복이며 질베며 꽃상여까지 모아 훨훨 불사르고 있습니다.

상주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사흘 밤낮을 눈 못 붙여 퀭한 눈이 아득, 아늑해집니다.



재작년에는 뒷집 아부지, 거년에는 옆집 어무니, 금년에는 울 어무니, 명년에는 또 누구 상여를 메게 될지... 늘 같이 있는 죽음이요 늘 같이 하던 잔치입니다. 망자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마을 사람 입에서는 여전히 아무개 어무니, 아무개 할아부지입니다.



땅속에 묻은 어무니라...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동구 지나 개울 건너 앞산에 그냥 계시는 어무니입니다. 살다 살다 설워지면 살다 살다 그리워지면 소주병 하나 꿰차고 손낫 하나 들고 와서 벌초 하고 술 한잔 올리고 "어무니, 저 왔구만이라우." 할 것이고 설이면 세배 대신 묏동에 와서 절을 올릴 것입니다.



딱히 돌아가신 것인지 늘상 같이 있는 것인지 마음에서는 분간이 안 됩니다. 오히려 마음 깊은 곳으로 쭈욱 내려와 들앉아 계시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따듯해지고 아늑해집니다.



"어야! 인자 내레가세..."

뒷집 아제가 어깨를 건드립니다.



"사실 만큼 사셨고 씻김굿도 해드렸것다 앞동산에 묻혔으니 원도 한도 없것네... 내 지난번 비끼내 마을에서 돌아가신 냥반 보니까, 그 양반 젊어서 소리 한다고 전국을 다니면서 온갖 기생첩을 끼고 마누래 속을 썩이더니, 말년에 그 마누래가 웬수 같은 인종아 어서나 죽어라 하고 온갖 패악을 부리다 진짜로 영감이 죽었는디, 도시 나간 자석들이 산소 관리하는 것 심들다고 육이오 국가유공자라 대전 국립묘지에 데려다 묻었다대... 아이고, 이 양반 마누래 속아지가 여간 심든 것이 아닌디 아, 젙에 산소라도 있어야 땟장 뜯음서 욕을 하든 패악을 부리든가 하제, 그라믄 마음이 그러든 안할 것인디 욕을 하자도 젙에 있기를 하나 평생 웬수 같은 영감 죽고는 먼 우울증인가 뭔가 걸려서 사람 꼴이 꼴이 아니대. 그런 사람에 비하믄 이라고 가까이 모신 것이 복이네, 어무니도 그렇고..."



"... 예에, 그라제라. 암시랑토 안 하요. 기양 어디 댕겨올라고 가신 것 같소... 이라고 다들 애써서 잘 보내주셨응께... 고맙구만이라우."

"고맙기는... 먼 소리를... 넘의 일이간디. 나도 낼모레믄 닥칠 일이고..."



어무니를 묻고 돌아가는 발길에 닿는 것이 흙인지 허당인지 모르겠습니다. 예가 이승인지 저승인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산 아래 집은 늘상 그리운 아그들을 기다리고 있고 논일, 밭일, 갱변일, 바닷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도 하늘 갈 때 이렇게 가고 싶다, 진도에 와서 초상 치는 것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런 말을 합니다. 사람이 하늘 갈 때 이렇게 간다면 무어 그리 죽음이 두려울 것이랴...



아직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이 안 가는 넋에게 하늘 소식 전해주고 저승길을 인도해주어야 할 한판 굿도 없이, 온동네 사람들이 태워주고 끌어주는 상여도 못 타고, 넋을 달래주는 상여 소리, 노래 소리 한 자락 없이...



차갑고 어두운 시멘트 콩쿠리트 바닥에서 상주들도 문상객도 속을 못 달래 넋이 썰렁하니 그 누가 망자를 달래주고 그 누가 이정스럽게 망자를 보내줄 것인가... 시커멓고 시끄러운 차속에서 시달려 낯설고 외로운 길을 가자니 죽음이 정말로 싫고 두렵기만 한 것이지요.



아! 그러고 보니 여기 사는 사람이라고 다 이렇게 하늘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두계나 호상계에 들어야 합니다. 나도 밤새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를 하고 상여 나갈 때면 하얀 치마저고리 선녀 옷 입고 상여를 이끄는 호상계에 들었습니다.



읍에 드디어 '장례식장'이 생겼습니다. 엊그제 장에 나가다 보니 그 장례식장에서 프랭카드를 여기 저기 걸어 놓았습니다. "장례 일체 120만 원!"



진도 사람들도 하늘 가는 길, 호강 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은 정말 싫습니다. 나도 죽어 하늘 갈 때 '접도 할머니'처럼 가고 싶습니다.